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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상반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무행정실무실습 참가 후기-이지수(5학년)

  • 작성자 약학대학
  • 작성일 2017.06.02
  • 조회 1936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습후기

이지수

 

2017년 정유년이 되었다. 방학한지 3주가 흘렀고 알람 없이 눈뜨는 하루의 시작이 익숙해졌으며, 아빠의 출근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25살로 보낸 1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1년 동안 뭐 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떤 대답을 해도 시원찮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학기 중엔 눈 뜨면 학교를 가야했고 방학 땐 안가면 손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유럽을 다녀왔다. 분명 바쁘게 움직인 것 같은데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기분은 뭐란 말인가. 나의 2016년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위한 특단의 조치로 달력을 꺼내들었다. 달력에 빼곡하게 적힌 시험, 약속, 여행계획 같은 일상의 흔적들이 소소하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많은 계획들을 세웠던 것 같으나 계획을 세웠다는 그 기억조차 흐릿하다.

약학과 신입생으로 맞는 1년은 정신없이 흘러갔었다. 마치 정류장이 없는 버스를 탄 것 같았다. 어디서 내리기는 내려야 하는데 맞게 가고 있긴 한 건지, 어디까지 왔는지 도통 모르겠는 기분. 어정쩡하게 창밖만 보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따라 내렸더니 종점이더라 하는 기분. 1년 뒤에 다시 탄 4학년 버스는 생경했던 풍경이 일상이 되고 무뎌져 무감각했다. 늘 같은 장소에서 타고 내리기의 반복. 무언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고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어디에도 도착한 적 없지만 어디로 더 나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지금은 환승 가능한 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졸업 후 가진 직장에서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면 그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땐 교통카드를 찍고 내려 다른 버스를 타는 것처럼 깔끔한 환승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올해부터 방학 없이 실습이 시작된다. 크게 병원과 지역약국으로 구성된 실습은 졸업 후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결정하는데 가장 큰 변수가 될 것 같다. 선배들로부터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으로,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병원 다녀온 사람은 난 절대 병원은 아니겠구나약국 다녀온 사람은 난 절대 약국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진로를 결정하는 건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는 걸까. 난 아직 이게 나의 길!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환승불가능한 곳에 등 떠밀려 내리기 전에 하나라도 늘어난 선택지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무실습을 신청했다.

실무실습은 대부분 강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기대했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막연히 인턴과 비슷한 간단한 업무 체험 과정일거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5일 과정 중 요일에 따라 주제가 바뀌고 다른 연사님들이 들어오셔서 강의가 진행되었다. 연사님들은 각 주제와 관련된 필드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였다. 월요일 실습 첫 날, 9시 까지 서초 사무소에 모인 후 원주 본사로 출발한다는 문자를 받고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려니 어색했다. 정확하게 어떤 장소로 모이라는 언질이 없어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 여쭤봤더니 모르시는 눈치였다. 로비 쪽에 모여있는 무리가 있어 대충 끼어들어갔더니 조금 뒤 다함께 원주로 가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원주까지는 대략 두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두가지였다. 1번 춥다. 2번 생각보다 좋네. 건물은 완공된 지 얼마 되지않아 깔끔했고 직원 복지를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갖고 직원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실제 직원분들이 어떤 패턴으로 근무하시는지 들을 수 있었다. 점심 후엔 건물을 견학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국민건강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곳이었다. 철처한 보안장치와 함께 관리되고 있었고 우리는 외부에서 특수유리로 보이는 벽의 투명도를 달리해 벽 너머 장치를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조절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첫 날 원주 견학과정을 진행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건강보험공단이나 심평원에 크게 생각 없던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견학이었다. 화요일부턴 두꺼운 책과 함께하는 강연의 연속이었다. 책과 펜을 받고 앉아있으니 마치 개강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험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강의 주제는 연사님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대부분 보건사회약학시간에 공부하고 시험 쳤었던 내용이었다. 전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된 연도라거나 행위별수가제라거나 심평원의 역할 같은 것. 내용에서 크게 새롭다 할만한 것은 없었으나 약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걸어간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받는 기분. 교과서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 분들이 직접 겪어온 시간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을 꼽자면 김보연 상근평가위원님인데, 강의하시는 자세와 본인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긴 시간동안 지친 기색도 없이 서슴없이 다가와서 다양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모습에서 본인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 덩달아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분이셨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십년 뒤, 삼십년 뒤에 저렇게 긍정적인 태도로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공의 기준은 스스로 세우는 것이라 했다.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성공한 인생도 정작 본인에게 불행할 수 있다. 환승역 도착을 알리는 음악이 흐를 쯤에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과정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환승이 된다. 될 때까지 마음껏 해봐야지. 그러던 중 꼭 내리고 싶은 정류장을 발견한다면 금상첨화다. 올해는 교통카드 빵빵하게 충전해둬야겠다. 내년에 달력을 뒤적거리는 일이 없도록.